(지난 한 주간 있었던 일들 중에서 특별히 감사할 내용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었으면 서로 이야기하며 격려와 위로를 나눕니다.)
20 ¶ 명절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왔던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 사람도 몇이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에서 온 필립보에게 가서 “선생님, 예수를 뵙게 하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이 말을 하고 두 사람이 함께 예수께 가서 그 말을 전하였다. 23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27 ¶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그 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29 거기에 서서 그 소리를 들은 군중 가운데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사가 예수께 말하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온 음성이다. 31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 32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일상 생활에서 점점 잘 쓰지 않는 용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초목이 무성하고 번영한다는 ‘영’과 빛난다는 ‘광’이 합쳐진 말이니, 무언가 번창하고 빛나는, 꽃이 만발한 것 같은 상태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과 같이 무언가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성취한 사람에게 바쳐지는 찬사와 영예를 떠올리게되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영광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구약에서 ‘영광’은 의외로 ‘무겁다’는 의미였습니다. ‘짐이 무거워서 들기 힘들다’ 하는 그런 무거움이 아니라, 무언가 묵직하다는 그런 무게입니다. 똑같은 물건이나, 비슷한 사람 중에서도, 뭔지 모르게 묵직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다름을 만들어 내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그들은 영광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하느님 영광으로 가득찬 성막(출애40:34)이나 솔로몬의 성전(1열왕8:11)에서 그런 무게를 주는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을 그들은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