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진리의 빛을 밝혀주셨나이다. 비오니,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인 우리가 이 빛을 따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지난 한 주간 있었던 일들 중에서 특별히 감사할 내용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었으면 서로 이야기하며 격려와 위로를 나눕니다.)
41 ¶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0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오늘 루가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열두 살 된 소년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전합니다. 성전에서 다시 찾은 예수님은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경탄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율법 교사들에 하느님의 계명을 설명하고, 성전이 바로 자기 아버지의 집이라 일컬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유대인들은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파는 오로지 율법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었고, 사두가이파는 혈통과 전통 안에 있는 하느님, 혁명당은 무력으로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느님만을 소리쳤습니다. 엄하고 심판하는 하느님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이들은 이런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백성 위에 군림하기 위한 권력과 힘의 쟁취로 이기적인 집단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 용서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드러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따르며 실천하는 자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이고 뜻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실천하셔서 양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목자로서 어느 사람도 결코 버리지도 잃지도 않으셨습니다. 성전에서 소년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는 바로 마치 자녀의 잘못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부모와 같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이신 것입니다.